태평성대(太平聖代)를 바라는 뜻으로 내호(內壺)에 넣은 개원통보(開元通寶)
등록일: 2014-07-28 14:18:35 , 등록자: 김민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바라는 뜻으로 내호(內壺)에 넣은 개원통보(開元通寶)
조선국 왕실 아기씨의 태(胎)를 향온주(香醞酒)로 세태(洗胎)
1930년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백자 태호(胎壺), 태조 이단의 태지석(胎誌石)을 빼돌렸다
태호(胎壺) 안태사(安胎使) 태실도감(胎室都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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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왕실은 아기씨의 태(胎)를 작은 백자로 된 내호(內壺)에 넣어 산실(産室)안에 길한 방향으로 보관하여 두었다.내호는 태 안 항아리,내항(內缸)이라고도 하며 외호에 비하여 홀쭉하게 생겼다.길일(吉日)을 택하여 태를 보다 큰 항아리인 외호(外壺)에 넣어 밀봉했다.외호는 태 밖 항아리,태호(胎壺),태항(胎缸),외항(外缸)이라고도 부른다. 당국(唐國)의 6대 황제 현종이 통치한 개원(開元) 연간의 치세인 개원지치(開元之治)와 같은 어질고 착한 임금이 다스리는 태평(太平)한 세상(世上)인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바라는 뜻으로 개원통보(開元通寶) 하나를 글자가 적힌 부분이 위가 되게 작은 내호(內壺) 바닥 중앙에 깔고 녹두와 보리 밀을 섞어 빻아 만든 향온곡(香醞麯)이라는 누룩을 사용하여 빚은 은은한 향과 깊은 맛을 지닌 향온주(香醞酒)로 여러 번 씻은 세태(洗胎)한 조선국 왕실 아기씨의 태(胎)를 그 위에 넣고 기름 종이와 남색 비단으로 항아리 입구를 덮고 벽사(辟邪)의 색인 붉은 색 끈으로 밀봉하여 더 큰 외호에 담는다. 내호와 외호가 움직이지 않도록 항아리 사이를 솜으로 채워서 메우는 충전(充塡)하여 고정시킨 후 습기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기름종이로 싼 후 마개와 뚜껑을 닫아 막는다.
조선국 왕실은 왕자가 출생하면 태실도감(胎室都監)을 설치하고 길일(吉日)·길지(吉地)를 택하여 안태사(安胎使)를 보내 태(胎)를 묻었으며 태실(胎室)은 대석(臺石)·전석(磚石)·우상석(遇裳石)·개첨석(蓋檐石)으로 구성되었다.관찰사(觀察使)가 국왕·왕후·왕세자(王世子)의 태실을 살피게 하였으며 대왕태실(大王胎室)의 경계는 300보(步)로 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했다. 1928년 한성으로 이전하여 1930년 일본군국주의 총독부가 전국 명당의 국왕,왕자,왕녀 태실 54기의 태항아리를 서삼릉으로 악의적으로 이장하면서 태실(胎室)을 훼손하였고 백자 태항아리 10여 점과 태조 이단의 태지석 등 태지석(胎誌石) 17점을 빼돌렸다.
왕릉은 한성 4대문 100리 안에 조성됐지만 태실은 왕실과 백성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려는 통치 이데올로기로 전국의 명당을 찾아 조성되어 왕실은 중국과 일본에도 없는 태실의 관리에 정성을 기울였다.태실(胎室)로 정해진 명당들은 거의 무쇠솥을 엎어 놓은 형상,혹은 바다 위에 거북이가 떠있는 형상인 돌혈(乭穴)에 속한다. 경기 남양주,광주,연천,포천,가평,강원 원주,영월,경북 영천,김천,울진,구미,상주,예천,성주,경남 마산,양산,사천,하동,부산,충북 충주,청원,충남 서산,보은,금산,홍성,부여,공주,전북 완주,광주 등 명당을 찾아 반드시 들판 가운데 둥근 봉우리를 선택하여 그 위에 태를 묻고 태봉(胎封)이라 하였고 농사를 짓거나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했다. 고려국 35대 국왕 이성계는 1393년 1월 7일 현 충청남도 금산군(錦山郡) 진산면인 전라도 완산부(完山府) 진동현(珍洞縣)을 진주(珍州)로 승격시키고 만인산(萬仞山)에 태실을 조성하였다. 국왕과 왕자,공주 모두 태봉(胎封)이 있으며 왕실에서 왕족의 태(胎)를 전국의 명당을 찾아 묻은 것은 태를 좋은 땅에 묻어 좋은 기를 받으면 그 왕족이 무병장수하여 왕위의 무궁한 계승에 기여할 것이라는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에 따른 것으로 명당에 태실(胎室)을 만들어서 왕실에 위협적인 인물의 배출을 막으려 했다. 영조는 강희 33년인 1694(숙종 20)년 9월 20일 창덕궁(昌德宮) 보경당(寶慶堂)에서 탄강하였으며 어머니는 숙의 최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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