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3사사(領三司事) 판3사사(判三司事)
등록일: 2014-06-16 10:05:31 , 등록자: 김민수 영3사사(領三司事) 판3사사(判三司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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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7월 28일 고려국(918-1393) 35대 국왕 이성계가 문하부(門下府)에 교지를 내려 홍영통(洪永通)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로, 안종원(安宗源)을 부세(賦稅)의 출납 회계 업무를 관장하는 3사(三司)의 정1품 영3사사(領三司事)로, 배극렴(裵克廉)을 익대보조공신 문하 좌시중(翊戴補祚功臣 門下 左侍中) 성산 백(星山 伯)으로, 조준(趙浚)을 좌명개국 공신 문하 우시중(佐命開國功臣 門下 右侍中) 평양 백(平壤 伯)으로, 서제(庶弟) 이화(李和)를 좌명 개국 공신(佐命開國功臣) 상의문하부사(商議門下府事)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 도절제사(都節制使) 의안 백(義安 伯)으로, 윤호(尹虎)를 판3사사(判三司事)로, 김사형(金士衡)을 좌명 공신 문하시랑 찬성사 판8위사(佐命功臣 門下侍郞 贊成事 判八衛事) 상락군(上洛君)으로, 정도전(鄭道傳)을 좌명공신 문하시랑 찬성사 의흥친군위 절제사(佐命功臣 門下侍郞 贊成事 義興親軍衛 節制使) 봉화군(奉化君)으로, 정희계(鄭熙啓)를 좌명 공신(佐命功臣)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8위 상장군(八衛 上將軍) 계림군(雞林君)으로, 이지란(李之蘭)을 보조 공신(補祚功臣) 참찬문하부사 의흥친군위 절제사(節制使) 청해군(靑海君)으로, 남은(南誾)을 좌명 공신 판중추원사 의흥친군위 동지절제사(佐命功臣 判中樞院事 義興親軍衛 同知節制使) 의령군(宜寧君)으로, 김인찬(金仁贊)을 보조 공신 중추원사 의흥친군위 동지절제사(補祚功臣 中樞院使 義興親軍衛 同知節制使) 익화군(益和君)으로, 장사길(張思吉)을 보조 공신 지중추원사 의흥친군위 동지절제사(補祚功臣 知中樞院使 義興親軍衛 同知節制使) 화령군(和寧君)으로, 정총(鄭摠)을 보조 공신 첨서중추원사(補祚功臣 僉書中樞院事) 서원군(西原君)으로, 조기(趙琦)를 보조 공신 동지중추원사 의흥친군위 동지절제사(補祚功臣 同知中樞院事 義興親軍衛 同知節制使) 은천군(銀川君)으로, 조인옥(趙仁沃)을 보조 공신 중추원 부사(補祚功臣 中樞院 副使) 용성군(龍城君)으로, 황희석(黃希碩)을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로, 남재(南在)를 좌명 공신 중추원 학사(中樞院 學士)겸 사헌부 대사헌(司憲府 大司憲) 의성군(宜城君)으로 삼았다.
1393년 9월 13일 조선국(1393-1897) 1대 국왕 태조 이단이 안렴사(按廉使)를 폐지하고 관찰출척사(觀察黜陟使)를 회복시켜 양광도는 한상질(韓尙質)을, 경상도는 민개(閔開)를, 전라도는 안경공(安景恭)을, 서해도(西海道)는 류원정(柳爰廷)을,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는 류양(柳亮)을, 경기좌도(京畿左道)는 하윤(河崙)을, 우도(右道)는 이빈(李彬)을 관찰출척사(觀察黜陟使)로 삼고, 또 홍영통(洪永通)을 남양 백(南陽 伯)으로, 안종원(安宗源)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로, 권중화(權仲和)를 세금을 매겨서 부과하는 부세(賦稅)의 출납 회계 업무를 관장하는 3사(三司)의 정1품 영3사사(領三司事)로, 정도전을 판3사사(判三司事)로, 류만수(柳蔓殊)와 성석린(成石璘)을 문하 시랑 찬성사(門下侍郞 贊成事)로, 남은(南誾)을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남재(南在)를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로, 이직(李稷)을 중추원 학사(中樞院 學士)로, 이근(李懃)을 대사헌(大司憲)으로, 한상경(韓尙敬)을 도승지(都承旨)로 삼았다. 1394년 2월 14일 영3사사(領三司事) 권중화(權仲和)·검교 문하 시중(檢校 門下侍中) 이무방(李茂方)·부세(賦稅)의 출납 회계 업무를 관장하는 3사(三司)의 종1품 판3사사(判三司事) 정도전(鄭道傳)·문하 시랑 찬성사(門下侍郞 贊成事) 성석린(成石璘)·대학사(大學士) 민제(閔霽)·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남은(南誾)·첨서중추원사(僉書中樞院事) 정총(鄭摠)·검교 대학사(檢校 大學士) 권근(權近)·중추원 학사(中樞院 學士) 이직(李稷)·대사헌 이근(李懃) 등 10인에게 명하여, 좌도 도관찰사(左道 都觀察使) 하윤(河崙)과 함께 동국(東國) 역대(歷代) 여러 현인(賢人)들의 비록(秘錄)을 두루 상고하여 요점을 추려서 바치게 하였다.
1398년 9월 5일 태조 이단이 세금을 매겨서 부과하는 부세(賦稅)의 출납 회계 업무를 관장하는 3사(三司)의 정1품 영3사사(領三司事) 심덕부(沈德符)에게 명하여 태묘(太廟)에 고하기를 “내가 착하지 못한 사람으로 조종(祖宗)의 덕을 계승하여 신민(臣民)을 통치한 지가 지금 7년이나 되었는데, 나이 많으니 병이 발생하고, 여러가지 사무가 많고 복잡하여 아침저녁으로 정사에 부지런하기가 어려우므로, 빠뜨려진 것이 많을까 염려되나이다. 왕세자 이방과(李芳果)는 자신이 적장자(嫡長子)의 처지에 있어 일찍부터 인덕(仁德)과 효도로서 나타났으며, 또한 개국(開國)의 초기를 당하여 나를 보좌한 일이 많았으므로, 이에 왕위에 오르기를 명하여 선대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감히 밝게 고하나이다.”하고 또 판3사사(判三司事) 설장수(偰長壽)와 예조 전서(禮曹 典書) 김을상(金乙祥)을 명국(明國) 경사(京師)에 보냈다. 1399년 12월 1일 정종이 이화(李和)로 세금을 매겨서 부과하는 부세(賦稅)의 출납 회계 업무를 관장하는 3사(三司)의 정1품 영3사사(領三司事)를, 조준(趙浚)으로 판문하(判門下)를, 김사형(金士衡)으로 상락 백(上洛 伯)을 삼고, 심덕부(沈德符)로 좌정승(左政丞)을, 성석린(成石璘)으로 우정승(右政丞)을, 이거이(李居易)로 문하 시랑 찬성사(門下侍郞 贊成事)를, 민제(閔霽)로 부세(賦稅)의 출납 회계 업무를 관장하는 3사(三司)의 종1품 판3사사(判三司事)를, 하윤(河崙)으로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를, 이직(李稷)으로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 권근(權近)으로 정당 문학(政堂 文學)을 삼았다. 1401년 7월 13일 태종이 세금을 매겨서 부과하는 부세(賦稅)의 출납 회계 업무를 관장하는 3사(三司)를 사평부(司平府)로 개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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