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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흥(金時興), 김준(金遵)을 배향(配享)하는 봉암사(鳳巖詞) 이여재(二如齊)

등록일: 2014-05-18 10:23:01 , 등록자: 김민수

김시흥(金時興), 김준(金遵)을 배향(配享)하는 봉암사(鳳巖詞) 이여재(二如齊)









http://blog.naver.com/msk7613











전라남도(全羅南道) 고흥군(高興郡) 과역면(過驛面) 가산리(佳山里)의 김녕 김씨(金寧 金氏) 관조(貫祖) 김시흥(金時興), 영돈녕공파(領敦寧公派) 파조(派祖) 김준(金遵)을 배향(配享)하는 봉암사(鳳巖詞)는 선조(先祖)나 선현(先賢)의 신주(神主)나 영정을 모셔두고 배향하는 사우(祠宇)로서 단종조에 충절을 지킨 만지당(晩池堂) 김준(金遵)을 사당이나 사원(祠院)에 모신 여러 위패(位牌)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주벽(主壁)으로 하고 그의 증손이며 사헌부 지평을 지낸 김원경(金元慶)의 아들인 참판공(參判公) 김구룡(金九龍)을 배향(配享)하기 위해서 건립하였다. 봉암사(鳳巖詞) 오른쪽에는 이여재(二如齊)가 있다. 단종(端宗)은 조선국(1393-1897) 5대 국왕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님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김녕 김씨(金寧 金氏) 영돈녕공파(領敦寧公派) 파조(派祖)인 만지당(晩池堂) 김준(金遵)은 단종 복위를 모의한 이개(李塏)·김문기(金文起)·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류성원(柳誠源)의 사육신을 지도하였다. 1826(순조26)년 고흥(高興)인 흥양(興陽) 지역의 사림들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건립된 봉암사는 단종(端宗)의 손위를 계기로 김준은 흥양(興陽)으로 내려와서 과역면 가산리에 정착하였다. 참판공(參判公) 김구룡은 김준의 증손으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서 적개공신(敵愾功臣)으로 봉록되고 그 후 여진족을 토벌하여 정난공신에 오른다. 이후 직위는 병조 판서에 올랐다. 김녕 김씨(金寧 金氏) 관조(貫祖) 김시흥(金時興), 영돈녕공파(領敦寧公派) 파조(派祖) 김준(金遵)을 배향하는 봉암사(鳳巖詞)는 1868년 서원 철폐 때에 헐리고 여러 변천사를 겪다가 1988년 사우를 다시 세워 현재에 이른다. 설화에 의하면 사우를 건립하려고 지관이 돌아보고 있을때 봉황(鳳凰)이 날아가다가 산봉우리에 앉더니 봉황을 닮은 바위로 변했기 때문에 그 곳에 봉암사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김녕 김씨(金寧 金氏) 관조(貫祖) 김시흥(金時興)의 20세손이며 13세손인 백암공(白巖公) 김구정(金九鼎)의 후손인 김술(金述)을 봉암사에 배향(配享)하여야 한다. 1639년 9월 7일 충청 수사(忠淸 水使) 김술(金述)이 치계하기를 “보령(保寧)의 어부들이 눌이도(訥伊島)에 갔다가 갑자기 적선(賊船)을 만나 배와 의복, 양식 등을 모두 약탈당했는데 어부들을 섬 속에 버려 두고 가서 겨우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 도적들은 모두 청의(靑衣)를 입고 있었는데 작은 모자를 쓰기도 하고 머리를 싸매기도 하였으며 한선(漢船)인지 적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합니다.”하였다.1640년 11월 2일 인조가 김술(金述)을 전라 우수사(全羅 右水使)로 삼았다.













김시흥(金時興 1090 ~ ?) 고려국 중기 문신, 김녕 김씨 관조, 호는 둔촌(鈍村) 또는 송악(松嶽)이며 신라국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으로 고려국 선종 7년 1090년에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고려국 인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翰林院)을 거쳐 병부 시랑 동북면 병마사(兵部 侍郞 東北面 兵馬使)를 지냈다. 묘청(妙淸), 조광(趙匡), 류참(柳旵) 등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위사공신(衛社功臣),정당 문학 광록대부 평장사(政堂 文學 光祿大夫 平章事)에 이르렀고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김녕 김씨 관조 김시흥(金時興)의 묘는 개성 송악산에 있었다고 하나 실전되어 2013년 4월 6일 김녕군(金寧君) 김시흥(金時興)의 종손인 영돈령공 김준(金遵)의 묘가 있는 전남 고흥군 과역면 가산리에 조성하였으며 전남 고흥 봉암사, 전북 익산 오강서원(五岡書院), 충남 아산의 도산사(道山祠) 등에서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김준(金遵 1409 ~ ?) 조선국 전기 문신, 자는 응원(應遠) 호는 만지당(晩池堂), 본관은 김녕(金寧)이고 영돈령공파 파조이다. 신라국 경순왕(敬順王)의 4남(四男)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烈)의 9세손인 고려국 문열공 김시흥(金時興)의 10세손으로 한성부 필동에서 출생하였다. 1426년 세종조에 등과 후 벼슬은 청현관 자헌대부(資憲大夫) 병조 판서(兵曹 判書),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 崇祿大夫)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로 단종(端宗)이 왕위에서 쫓겨나자 벼슬에서 물러난 후 단종 복위를 모의한 사육신(死六臣)인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의 종가를 보종(保宗)하라는 뜻에 따라 흥양(興陽)으로 낙향하였다. 낙향한 후 단종(端宗)이 승하(昇遐)했다는 소식을 듣고 월악산(月嶽山)에 들어가 통곡(慟哭)하며 방상 3년(方喪 三年)하였다. 세조(世祖)가 좌의정(左議政)에 임명(任命)코자 여러 차례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충절과 의기를 몸소 실천하였다. 전남 고흥 과역 가산 봉암사와 전북 익산의 오강서원(五岡書院)에서 배향(配享)되고 있다. 후손들에게 9가지 부끄러움을 경계하는 잠언서인 9치잠(九恥箴)과 학문을 열심히 하고 주색을 멀리 하라고 당부하는 계자문(戒子文)을 지어 향인과 후손들에게 충의사상을 가르쳤다.









9치잠(九恥箴)







임금께 충성하지 못하면 절의를 세우는데 부끄러울 것이요



어버이께 효도하지 못하면 인도를 펴는데 부끄러울 것이요



형인지 아우인지 모른다면 천륜에 부끄러울 것이요



집안을 먼저 정제하지 못하면 일가들께 부끄러울 것이요



이롭지 못한 벗만 있고 유익한 벗이 없으면 벗을 사귀는데 부끄러울 것이요



손님을 박하게 대접하면 예의에 부끄러울 것이요



언어가 충신하지 못하면 대인에 부끄러울 것이요



일에 시비가 많으면 처세하는데 부끄러울 것이요



일찍이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늙어서 부끄러울 것이다







계자문(戒子文)







너희들에게 한 마디 경계하나니 항상 조심하여 자신을 수양해야 할 것은 충신치 못하면 주리에서도 행신하기 어려울 것이니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학업을 넓히며 자신을 단속하고 행동하기를 쉬지 않고 해야 할 것이다. 한 평생 주색을 조심하여 지나치게 마시지 말고 급히 덕행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여재기(二如齋記)







재사(齋舍) 이름을 이여(二如)라 것은 중용에 이른바 양양히 그 위에 신령이 있는듯하며 그 좌우에 신령이 있는듯하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사람이 선조를 받드는데 있어 삼가기를 위와 같이 하여야만 도리에 가까울 것이다. 흥양읍 동쪽 기슭에 김녕 김씨 2대의 산소가 있으니 그 하나는 영돈녕공 만지당 김준의 산소이고 김준의 증손인 참판공 김구룡의 산소이다. 만지당 선생은 충의공 김문기의 사종숙(四從叔)의 아들이다. 단종이 손위(遜位)하실 때에 김문기가 김준에게 말하기를 나는 절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 그러나 그대는 김녕군의 10세손이니 종가(宗家)를 보종(保宗)하라고 하여 김준은 벼슬을 버리고 벽지로 피난하였다. 세조가 좌의정으로 임명하려 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두문불출하고 절의를 지켰다. 참판공 김구룡은 길주의 반적 이시애를 토벌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고을 사람들은 영돈녕공 김준과 참판공 김구룡을 기리어 말하기를 공훈을 추모하기 위해서는 봉암사(鳳巖詞)를 묘 앞에 짓고 제사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여 향화를 올려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우는 폐허가 되어 나무와 잡초만이 자라고 사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음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탄식하였다.





1905년 가을 후손인 김인석 김두형 김종현 김용석이 합의하여 힘을 모아 4간 집을 옛 터에 짓고 1년에 한 차례씩 제사드릴 곳으로 삼았다. 김인석은 족인 김영순과 함께 먼 길을 찾아 나에게 편액과 사실을 써달라고 청함에 노쇠한 몸으로 붓을 휘두를 힘도 없지만 그들의 간곡한 정성을 물리치지 못하고 마침내 글을 쓴다. 아름답도다 두 분의 후손들이여 이제 재실을 지었으니 황폐되지 않을 것이며 또 묘소에 향화를 올리게 되었으니 하나를 들어 둘을 얻었다고 하겠다. 이 재사 이름을 붙인데 있어서는 오로지 준칙과 옛 교훈에서 나온 것이다. 정성들여 봉향 강신하면 절하는 순간 양양하게 조상이 오셔서 계신듯하여 자못 감동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어찌 한사코 힘써야 한다고 말하겠는가? 두 분의 묘재에 이름을 붙인 것은 두 분을 같이 모시려는 뜻에서였다. 정성들인 바가 어찌 소홀하다고 하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선조를 위해 정성들이는 것을 보건대 매양 가까운 선조에만 독실하고 먼 조상에는 소홀한 사람이 많다. 이제 김녕 김씨 여러분은 한결같이 먼 조상의 묘소에까지 정성을 들이니 이와 같이 독실한 뜻을 가상히 여긴다. 두 분의 후손된 사람은 대대로 오늘의 여러분의 마음과 같이 한다면 이 재사는 비록 100년이 된다 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이여의 이름도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헛되지 아니할 것이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1909년 상순 덕은(德殷) 송병순(宋秉珣)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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