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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영신부(奎瀛新府)
등록일: 2012-07-01 20:45:35 , 등록자: 김민수 
규영신부(奎瀛新府)
주자(鑄字)를 주조하는 경우는 주자도감을 임시로 설치하거나 지방 감영 또는 수어청(守禦廳) 등에 명하여 만들어 냈지만 그 주자는 교서관으로 보내져 인쇄에 사용되었다. 정조는 새로 규장각을 설치하여 내각으로, 교서관을 외각으로 삼고 관찬서의 편찬 및 간행업무를 촉진시켰다.그런데 간행업무를 맡고 있는 교서관을 돈화문(敦化門) 앞으로 옮겼으며 주자시설은 어정제서(御定諸書)의 인쇄를 위하여 1794년(정조 18) 창경궁의 옛 홍문관(弘文館) 자리에 새로 설치하였다. 처음에는 감인소(監印所)로 명칭하였으나 태종 대의 고사에 따라 주자소(鑄字所)로 개칭하였다. 한경지략(漢京識略)에 정조 대에 선인문(宣仁門) 안에 있는 주자소에 규영신부(奎瀛新府)의 편액을 걸었다고 하였고 1800년 윤 4월 주자소(鑄字所)가 다시 홍화문 오른쪽 익랑(翼廊)의 의장고(儀仗庫) 대청으로 옮겨져 운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정조실록에 을묘년에는 정리의궤(整理儀軌) 및 원행정례(園行定例) 등의 책을 장차 편찬,인행하려는 계획 아래 명하여 생생자(生生字)를 자본을 삼아서 구리로 활자를 주조하게 하여 크고 작은 것이 모두 30여 만 자였는데 이를 ‘정리자(整理字)’라 이름하여 규영신부(奎瀛新府)에 보관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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