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신(三重臣)은 이양(李穰), 조극관(趙克寬), 민신(閔伸)
등록일: 2014-05-02 08:47:00 , 등록자: 김민수 3중신(三重臣)은 이양(李穰), 조극관(趙克寬), 민신(閔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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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단종 1)년 10월 10일 수양대군(首陽大君:세조)이 김종서에게 이르기를 “또 청을 드리는 편지가 있습니다.”하고, 종자(從者)를 불러 가져오게 하였다. 양정이 미처 나오기 전에 세조가 임어을운을 꾸짖어 말하기를 “그 편지 한 통이 어디 갔느냐?”하였다. 지부(知部) 김승규(金承珪), 의 것을 바치니 김종서가 편지를 받아 물러서서 달에 비춰 보는데 세조가 재촉하니 임어을운이 철퇴로 김종서를 쳐서 땅에 쓰러뜨렸다. 김승규가 놀라서 그 위에 엎드리니 양정이 칼을 뽑아 쳤다. 세조가 손을 잡고 최항에게 이르기를 “황보 인(皇甫 仁)·김종서(金宗瑞)·이양(李穰)·민신(閔伸)·조극관(趙克寬)·윤처공(尹處恭)·이명민(李命敏)·원구(元矩)·조번(趙蕃) 등이 안평대군(安平大君)에게 당부(黨附)하고,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 都節制使) 이징옥(李澄玉)·경성 부사(鏡城 府使) 이경유(李耕㽥)·평안도 도관찰사(平安道 都觀察使) 조수량(趙遂良)·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 都觀察使) 안완경(安完慶) 등과 연결하여 불궤(不軌)한 짓을 공모하여 거사할 날짜까지 정하여 형세가 심히 위급하여 조금도 시간 여유가 없다. 김연(金衍)·한숭(韓崧)이 또 주상의 곁에 있으므로 와서 아뢸 겨를이 없어서 이미 적괴(賊魁) 김종서(金宗瑞) 부자를 베어 없애고 그 나머지 지당(至黨)을 지금 아뢰어 토벌하고자 한다.”하였다.
수양대군(首陽大君:세조)이 환관 전균(田畇)을 불러 말하기를 “황보 인(皇甫 仁)·김종서(金宗瑞) 등이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중한 뇌물을 받고 전하께서 어린 것을 경멸히 여기어 널리 당원(黨援)을 심어 놓고, 번진(藩鎭)과 교통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하기를 꾀하여 화가 조석에 있어 형세가 궁하고 일이 급박한데 또 적당(賊黨)이 곁에 있으므로, 지금 부득이하여 예전 사람의 선발후문(先發後聞)의 일을 본받아 이미 적괴(賊魁) 김종서 부자를 잡아 죽였으나, 황보 인 등이 아직도 있으므로 지금 처단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너는 속히 들어가 아뢰어라.”하였다. 조극관(趙克寬)·황보 인(皇甫 仁)·이양(李穰)이 3문에 들어오니 역사(力士) 함귀(咸貴) 등이 철퇴로 때려 죽이고, 사람을 보내어 윤처공(尹處恭)·이명민(李命敏)·조번(趙藩)·원구(元矩) 등을 죽이고, 3군(三軍) 도진무(都鎭撫)·상진무(上鎭撫)·부진무(副鎭撫) 아래의 낭관급 벼슬인 진무(鎭撫) 최사기(崔賜起)를 보내어 김연(金衍)을 그 집에서 죽이고, 3군(三軍) 진무(鎭撫) 서조(徐遭)를 보내어 현릉(顯陵)의 비석을 감독하는 민신(閔伸)을 비석소(碑石所)에서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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